서울 주택난이 만든 ‘셋방’… 그 뿌리는 일제강점기였다
서울의 셋방 문화는 언제 시작됐을까요? 일제강점기 주택난이 만들어낸 ‘셋방’의 역사와 그 유산을 살펴봅니다.
급변하던 서울, 주거 공간이 사라지다
1910년대 이후, 일제는 조선의 수도인 한성을 ‘경성부’로 개편하고 식민지 행정과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20~3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성(서울)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 시기, 일본인 상인과 기업가, 조선인 농촌 유입자 등이 몰리면서 도시는 급속히 팽창하지만, 인프라와 주거는 이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외곽의 전통적인 한옥촌이나 정비되지 않은 토지 위에 무허가 가옥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기존 가옥도 ‘셋방’ 형태로 쪼개져 임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형 도시하층 주거의 시초인 ‘셋방’의 기원입니다.

셋방이란 무엇인가? – 서울형 임대주거의 시초
셋방(셋방살이)은 말 그대로 주인집의 일부 공간을 나누어 빌려 쓰는 형태입니다.
주거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독주택을 여러 세대가 나누어 사는 구조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현재의 다가구 주택, 반지하, 원룸의 원형으로,
- 거실, 부엌, 화장실을 공유하고
- 각 방만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형태가 많았습니다.
당시 경성 인구의 40% 이상이 이러한 셋방 또는 비정규 거처에 살았다는 통계도 존재합니다.
셋방의 확산 배경 – 일본의 도시 개발 vs 조선인의 생존
일제는 도시 중심부에 일본인을 위한 근대식 주택과 정비된 도로를 만들었지만, 조선인 다수는
- 도시 외곽의 불량지
- 하천 주변의 빈 땅
- 기존 민가의 일부 공간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즉, 도시는 이중 구조로 나뉘었고, 조선인들은 셋방이나 방세방을 통해 생존 공간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근대 도시화가 식민 구조 속에서 불평등하게 작동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기도 합니다.
셋방의 영향 – 현대 주거 양식의 원형
셋방은 단순히 임시 주거의 개념을 넘어,
- 다가구 임대주택
- 월세 중심의 부동산 운영 구조
- 도시 빈곤층의 주거 문화
로 이어지는 현대 주거 문제의 뿌리가 됩니다.
또한, 집을 소유한 사람은 방을 잘게 나누어 수익화하고,
세입자는 안정적 생활공간보다 월세 감당에 초점을 둔 주거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이 고착되었습니다.
셋방의 유산, 지금도 이어지는 ‘서울형 주거 빈곤’
오늘날 서울 곳곳에 남아 있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은 모두 이 시기의 셋방 문화에서 파생된 것들입니다.
도시 주거 정책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 공간을 나누어 쓰는 문화
- 사적 임대시장의 영향력
- 서민 주거의 불안정성은 여전히 뿌리 깊습니다.
셋방, 서울이 안고 있는 오래된 그림자
셋방은 단순한 역사적 주거 양식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감당하지 못한 주거 불균형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서울의 수많은 청년, 이주민, 고령층이 셋방의 후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부동산 법률 &정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분 다툼? 무단 점유? 내용증명으로 대응하는 법! (4) | 2025.07.08 |
|---|---|
| 2025 서울 토지거래허가제 재지정—놓치면 안 될 핵심 포인트 (6) | 2025.07.08 |
|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완전 분석: 25차례 대책부터 임대차3법까지, 강력한 규제 정책이 남긴 성과와 논란의 5년 (6) | 2025.07.06 |
| 이명박·박근혜 정부 부동산 정책 대전환 분석: 규제 완화에서 투기 과열까지, 10년간 성장 중심 정책이 남긴 명암과 현재적 교훈 (2) | 2025.07.05 |
|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 완벽 분석: 종부세부터 세종시까지, 20년 후 재평가하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실험과 의미 (5) | 2025.07.05 |